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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 <선의 마음⑪> 아브라함의 선 -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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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 <선의 마음⑪> 아브라함의 선 - 첫번째

안녕하세요,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성도님들🤗 오늘은 아브라함의 선 첫번째 시간입니다. 구약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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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성도님들🤗

오늘은 아브라함의 선 첫번째 시간입니다.

구약시대의 위대한 인물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네 분 중 세번째 서열인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 아내의 이름도 원래는 사래였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말씀을 주시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면 친히 이름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벗이라는 귀한 칭함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선의 마음, 시작하겠습니다✨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 generated by Chat GPT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 13 : 8 ~ 9)

 

 

아브라함은 이름 앞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칭함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인정받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었던 것과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한 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아브라함의 관용과 양순한 마음입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관용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양순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리 안에서 이도 가하고 저도 가한 마음인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양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선하고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런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아브라함에게 온전히 임해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관용과 양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조카 롯은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올때부터 아브라함과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받게 되었지요. 그러나 둘의 소유가 모두 늘어나게 되자 둘은 계속해서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는 물도 목초지도 부족했기에 그들의 목자들끼리 다투게 된 것이지요.

그 때 아브라함은 오늘의 본문처럼 조카 롯에게 먼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줍니다. 아브라함은 질서상 얼마든지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우선권을 포기하고 조카 롯이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에 롯은 삼촌 아브라함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물도 넉넉하고 기름진 땅을 선택해 갔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이때의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다면, 롯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겠는지요?

때는 이때다 하며 롯처럼 좋은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삼촌에게 양보했겠습니까.

물론 이 때 롯이 삼촌에게 양보했다해도 아브라함은 또 다시 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알고 질서를 생각한다면 삼촌 아브라함에게 더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권했을 것입니다. 결코 자기가 먼저 좋은 땅을 택할 수 없지요. 하지만 롯은 한번도 사양하지 않고 자기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해 갔으니 그 마음됨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떤 선택을 . 롯이 자기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해 간 것을 보고 그 넉넉한 마음으로 롯에 대해 아무런 분냄도 서운함도 없었지요. 아브라함에게 주고 또 줄 수 있는 관용의 마음과 이것도 저것도 가하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하는 양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으로 상대를 섬기므로 소자에게도 자신의 권리를 내줄수 있었고 오히려 더 달라해도 기꺼이 더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마음에는 이런 관용의 마음이 얼마나 임해 있는지요.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2.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마음이 아름답고 고우며 많은 것을 허용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이 금그릇으로 온전히 나오게 하시기 위해 여러 연단을 이루셨지요. 그러나 그 연단은 다른 선지자들이 받은 연단과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자신이 철저히 죽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지요.

자신이 철저히 죽어졌을 때 비로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해졌고 중심으로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연단을 눈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소망과 믿음가운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함으로 축복을 받아낸 경우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아브라함에게 번민하고 애통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세와 비교할때 그 정도가 덜했던 것이지이요. 물론 모세와 아브라함은 그 처한 상황도 다르고 사명도 달랐기에 연단도 달랐지만 그 마음밭을 이루는 토질의 속성이 서로 달랐기에 하나님께서 경작하시는 방법도 달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크고 좋은 그릇이요 그 마음이 정직하고 성실히 행하는 것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도 대충하지 않았고 성실히 했고 소심하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덜렁대는 모습도 볼 수 없지요. 모든 일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처리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이뤄내고자 했습니다. 정돈되고 정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는 낮은 마음이었으되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혹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에 더하여 정직하고 성실히 행해가니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으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행한다면서 사심으로 인해 성실하게도 정직하게도 행하지 않지요.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는 이들은 축복 주실 것을 믿기에 더욱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모습이었기에 창세기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고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타나는 예시를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의 롯과 가족이 전쟁에 연루되어 포로로 잡혀갔을때 아브라함이 앞장서 나아가 조카 롯을 구해온 일이 있었지요. 아브라함은 롯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앞장서 나아가 구해왔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통해 소돔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소돔왕은 그 물품을 취할것을 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왕에게 큰 이득을 베푼 사람으로써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할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조금의 사심이라도 있었다면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니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이라며 떳떳하게 받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떠한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고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진리의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나님께로만 복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으로 이런 마음을 선하다 하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었기에 잠언 11장 3절의 말씀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하는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주변에 악한 길로 인도하고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있는만큼 미혹을 받아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는 말씀을 명심하여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직하고 성실했던 아브라함은 그저 얻을 수 있는 것도 반드시 정가를 지불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3장에 나온대로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때 그랬지요. 매장지를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그냥 제공하겠다고 했을때 덥석 받은 것이 아니라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막벨라 굴을 취했습니다. 조금도 사심이 없고 공짜를 원하지도 않으며 정당하지 않는 것은 원하지도 않는 성실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은 아브라함에게 선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변개하여 매장지를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 문제를 없앴던 것입니다.

이런 선의 지혜는 먼저 자신의 것을 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고 정직한 마음이 될 때 나올 수 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야고보서 3 : 17)

 

 

하신 말씀에 따라 더욱 선을 사모하시되 오늘 말씀드린 아브라함의 선에 이르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히 넘쳐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