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성도님들 🤗
오늘은 선의 말씀 마지막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선의 말씀을 게시하면서 하나님께서 기쁘시다 하시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많이 느껴보게 되었습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우주와 같이 넓은 믿음의 선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리고 룻과 나아만처럼 하나님을 잘 모른다해도 그 중심이 선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을 주시는 것도 감동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모습을 깨트리며 아버지의 일을 이루어 나간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도 감동이 되며 저도 너무나 닮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 저의 마음은 너무 작고 작지만 늘 기도해가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소망이라고 생각해봅니다. 💕
아름다운 선의 마음 마지막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장 28 ~ 30)
""막달라마리아 요셉 에녹도 최고의 선을 이룬 분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열 두 분의 선만 이룬다 해도 여러분도 최고의 선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의가 없고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가 있으면 어느 누구와도 부딪힐 수 있으니 자기를 깨트려야합니다. 엘리야는 육으로 볼때는 매우 유약한 성훔이었으나 아버지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통해 강하고 담다해졌습니다.
엘리야의 유약한 면모가 보이는 장면을 발견하셨는지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인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린 후 왕비인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고자 추적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으면 당연히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이세벨은 그렇지 않았지요.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열왕기상 19 : 1 ~ 4)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떡과 물을 마시게 하셨고 이로 인해 엘리야는 새 힘을 얻어 40주야를 행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선 두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듯한 사랑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약한 모습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 상황을 이해해야합니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왕은 전국에 명하여 엘리야를 잡도록 했고 엘리야는 오랫동안 왕을 피해다녔습니다. 수 년간을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다녔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왕에게 가서 비가 내릴 것을 말하라 하셨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여 담대하게 아합 왕 앞에 나가 비가 올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아합 왕과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킬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지요. 그러니 이제 숨을 고를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요.
엘리야의 세번째 선의 마음은
3.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써 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지막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엘리야의 마음 일부가 세례요한에게 온 것이므로 하늘에 있는 엘리야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천국에 이르면 본래 엘리야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설교를 들으면서 동시에 밥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둘로 분리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는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1 : 5 ~ 6)
**태어날 때는 원죄를 타고났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의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더 악으로 갈 수도 있고 더 선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선한 부모의 기를 타고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악을 쉽게 빼낼 수 있어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날 때부터 의인인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누가복음 1 : 13 ~ 17)
스가랴와 엘리사벳은 가브라엘 천사장의 말씀대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요한은 빈 들에서 지냈다 했습니다. 마음에 엘리야의 심령이 임해있고 이미 전에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빈 들에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 구분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가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구분되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실 때도 동정녀마리아가 이 분이 누구신지를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였습니다. 또 주님은 태어나실때부터 마굿간에 태어나셨지만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와서 경배했습니다. 또 여러 역사들을 경험했지요. 그러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목수 일을 시키지 않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존중했습니다. 항상 하나님 일을 예비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시며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면서 늘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이루었고 세상에 드러날 때를 정확히 주관받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인줄 알았을까요?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의 영을 받은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 자체가 마음이고 부모의 기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미 어릴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알고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릴 때 성전에서 자신을 찾는 부모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셨습니다.(누가복음 2 : 49)
하지만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를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엘리야인지 물었을 때 요한은 아니라고 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 안에 엘리야의 영이 담겨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마음에 주관을 받게 됩니다. 세상과 구분되어 절제된 삶을 살며 늘 하나님과 교통하며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나가게 되었지요. 즉 내가 오실 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무엇을 외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하나하나 마음에 주관받게 되고 세상에 드러날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마가복음 1 : 5)
말라기 이후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계시가 끊긴지 400여년 만에 나타난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절에 사람들이 요한을 곧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6절에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선을 넘어서지 않고 항상 앞에 오실 주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그 뒤에 오실 분이 누구실까 어떤 분이실까 하고 심히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의 길을 잘 예비하고 하나님의 정하신 떄가 되자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 : 26) 제자들은 좋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한은 "이제 내 시대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요한의 마음이 잘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 28절) 제자들을 오히려 타이르고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심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주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후 잡혀가 감옥에 갇혔어도 이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은 것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지금을 살아가는 여러분께도 이런 사명이 있습니다. 세례요한과 같이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지요.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각자가 맡은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것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또 동역자들이 더 크게 영광돌릴 수 있다면 중심에서 기뻐하며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이 큰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더 드러낼까 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피조물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하신 말씀은 피조물로써 경작받은 이 중 가장 큰 자, 서열이 가장 높은 분이 바로 엘리야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도 진정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면 삶 속에서 선의 말씀을 하나하나 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품에 기쁨으로 안기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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