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인물 중 요나단의 선의 마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아버지였던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여도,
육의 아버지인 사울보다 하나님께서 다음 왕으로 기름부으신 다윗을 더 사랑했던 요나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선한 것을 택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희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성도님들께서는 이런 요나단과 다윗처럼 함께 아름다운 마음을 이루어가는 친구가 되기를 너무너무 사모하실 것 같은데요,
요나단의 아름다운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무엘상 19 : 4 ~ 5)
선을 알아볼 수 있는 선의 마음을 가진 인물, 요나단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로써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될수도 있었던 인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음 왕으로 세운다 하셨으니 어찌보면 요나단의 적수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했고 정말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다윗의 선함을 알아볼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요나단에도 있었기 때문에 사심으로 왕위를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쫓는 편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 다음 왕으로 기름부으셨기에 본인이 왕이 될 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이 아무리 다윗을 죽이고자하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았더라도 기름부음받은 왕이기에, 다윗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수를 쓰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아무리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도 죽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해하고자 할때 가만히 있지 않았고 아버지가 범죄를 묵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9 : 4~5)
만일 제가 요나단의 입장이었다면 다윗 편을 들 수 있었을까요?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다윗 편을 들 수 있었지만, 사울은 아버지이자 왕이기에 불효, 불충이기도 하고 다윗이 다음 왕이 되면 자신이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이런 갈등을 한 것이 아니라 진노한 사울을 보고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윗을 더욱 변호했습니다. 선한 마음이 있기에 아버지에게 강청하다 사울이 던진 창에 맞아 죽을뻔하기도합니다. 그럼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다윗을 변호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요나단의 선의 마음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쫓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 요나단은 다윗이 차기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본인이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쫓았고 다윗이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명예도 영광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하나님 보실때의 선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상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멈칫하거나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에는 주저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것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수고했는데 저들은 이것을 쉽게 가져가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사심, 곧 자기 욕심을 구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소금처럼 아무 형체도 없이 녹아질 수 있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입니다.
이런 선을 행하는 사람은 지금 눈에 당장 띄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려주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선입니다.
-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큰 악을 막기 위해 살기등등한 사울 앞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강청했습니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어찌하든 더 큰 악을 행치 않게 하도록 자신이 미움받게 되더라도 거듭 거듭 나아가 간청한 것입니다.
*실생활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예시입니다.
오늘날 형제 자매 가족들이 사망의 길로 나가는 것을 볼때 가족들을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사랑의 기도를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자신의 도리를 끝까지 다한 선입니다.
- 선한 사람은 주변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악한 아버지로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녀로써의 도리를 결코 져버리고 아버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악인과 함께하는 것의 결과가 어떤지 알았지만 결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과 함께 싸우다가 당당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끝까지 생사를 함께하므로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입니다.
✔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도 도리를 쫓아 끝까지 쫓는 것이 선일까요?
요나단은 자녀된 입장에서 멸망의 길로 가는 아버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녀된 도리를 다하기 위함이었지, 상대의 악함에 동조하거나 악함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선하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버릴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동조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선입니다.
범죄하는 것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저희가 범죄할 때 가장 애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며 성령님이십니다.
진정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말며 기쁨만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 :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후략)"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한 요나단의 선의 모습 감동입니다 😭
과연 저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쳤을때 정말 욕심,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며 행할 수 있을까요?
또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제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이룬 것을 상사나 주변 동료가 더 중요한 업무를 위해 가져간다면 저의 마음은 어떨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악을 행하고 오히려 아들을 죽이고자 하는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찌하든 선의 길로 돌이킬 수 있도록 간청하는 모습, 자신의 유익을 내세우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마음을 다해 이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
너무너무 사모하게 됩니다 😭
다음 선의 마음은 "다윗의 선"입니다.
저는 다윗이 소년시절,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물리친 이야기를 너무너무 좋아하고 그 마음을 사모하는데요, 과연 다윗의 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램브란트 - 다윗과 요나단 (1642) -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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